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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솔가지

3 .1절 폭설이 쌓인 범어사 언저리 계명산을 다시 올랐다.

by 푸른솔가지 2006. 3. 6.

3 .1절 폭설이 쌓인 범어사 언저리 계명산을 다시 올랐다.


지난밤부터 꾸물꾸물 거리는 공기는 습한 공기와 더불어 진눈깨비가 되어 온 세상을 적셨다.


이른 아침 창문 열고 바라보니 앞 금정산 산하가 전부 하얀 눈밭이다. 지난 밤부터 내린비가 다음날 새벽까지 내려 출퇴근까지 막았고 게다가 전직원들 비상근무로 하루를 퍽이나 피곤하게 한 것에 비하면 오늘의 눈세상은 도로에는 흔적 없이 빗방울로 흘러내리고 찬공기에 차마 녹지 않은 산에만 쌓여 있어 눈정취를 감상하기에는 더 할 나위없이 좋은 날이다.


오전내내 거실에서 이리저리 헤매다 찌부덕한 몸을 그냥 두기에는 넘 아까워 막내를 데리고 한번 나가볼까 했는데 오늘도 저희 엄마따라 나서기에 나혼자 차를 끌고 다시금 범어사 입구로 갔다.


전과 마찬가지 차를 주차시켜 놓고는 산을 올랐다. 산 초입에는 거의 눈이 녹아 없어졌지만 고지로 오를수록 제법 많이 밣히더니 이윽고 나의 무릎까지 잠기는 지경에 까지 왔다.


부산의 경우는 다른곳과 달라 1년내내 있어도 거의 눈구경을 할 수 없고 그나마 눈이 오더라도 2밀리 이하인데 그마저도 아침이면 전부 녹고 없어져 버려 부산사람 눈구경하기 힘들다. 나의 경우는 어릴적 강원도 외가에서 살았고 더욱이 군생활을 강원도 철원 오지에서 복무하였으므로 지겹도록 눈을 상대하였기에 별로 흥이 나지 않았지만 최근 나이가 들어 그런지 그런것들은 어느새 잊어버리고 눈이 오면 괜히 흥분되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직업이 공무원이다 보니 남들 놀때 놀지 못하고 거꾸로 비상근무를 하여야 하는게 다반사. 다행히도 오늘은 그런 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과는 다르게 계명산 정상을 정복해보기로 하고 홀로 힘들게 올랐다. 금정산 정상이 650여미터 되니까 계명산의 경우 양 580여미터 됨직하다. 등산이나 하산하는 등산객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시각이 오후 3시이니 그럴 수밖에.


올라도 올라도 정상이 보이지 않는다. 8부 능선까지 왔을까. 잔설에 땅은 질고 게다가 눈이 쌓여 있으니 걸음 옮기기는 더욱 힘들다. 핸드폰으로 자가 촬영을 하기도하고 잔설이 소록소록 맺혀있는 잔가지 잔솔 정취감. 여기저기 쌍인 눈꽃잎을 얘들 마냥 흔들어보기도 하며 지친줄도 모르고 올라간다. 거의 나홀로 천국이다.


그런데 정상이라고 도착한 곳이 정상이 아니다. 반대편쪽으로 제법 높은 산이 연이어 보인다. 이곳이 정상이 아니고 한눈에 한번 도 올라야 정상임이 분명하였다. 시간을 보니 4시를 훌쩍 넘어가고 있다, 땀에 젓은 속옷과 휘몰아치는 눈바람 솔바람속에 제법 차가웠다. 어찌나 땀은 흐르는지 참 춥다.


시간을 예상해본다. 저곳까지 등정하면 30분정도 소요되고 나중 하산하는 시간까지 염두에 두면 향후 1시간 30분정도 소요되니 5시30분 정도 되면 주차한 곳까지 예상되었다. 해가 지기전에는 충분히 하산가능한 시간이다. 결정을 하고 다시 반대편 정상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오르는데 음지라 그런지 눈이 거의 무릎까지 빠진다, 재미있기도하지만 겁도 약간 났다, 해는 금정산 너머로 얕게 비치고 있고 오가는 등산객 볼 수 없었고 눈길이 거의 한두명 정도의 발자국만 있는 것으로 보아 거의 무인지경 산중 외톨이 신세인 것이다.


이런저런 엉망진창 상상을 하며 힘든지도 숨이 가득찬지도 모르고 오르니 정상이다. 등산화는 물론 하의는 전부 흙과 눈으로 뒤범벅이고 상의는 땀에 젖었고 양손은 얕보고 미처 장갑을 준비하지 못해 엉망이다. 여기저기 돌탑이 쌍여있고 처음보는 산악회의 리본들이 정상 바위 옆 나뭇가지에 날리고 있음을 볼때 이곳이 정상임에 틀림없어보였다.


흐미하지만 자세히 보니 정면으로 시내 저멀리 온천장쪽 우리 아파트까지 보이니 감격이다. 거의 알프스산 정복기분이다. 뒤쪽으로는 양산시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금정산 범어사 지장전과 금강암이 희미하게 보이니 경치가 그야말로 한폭의 동양화다. 이런때 취미나 직업이 사진사였거나 산행준비를 좀더 철저하게 하였더라면 이처럼 멋진 광경을 촬영하였거나 동반자가 함께 하였더라면 그 쾌감은 그 어느 것에 비할 바 되지 않았을 것이다.


( 뒤에 안일이지만 엄마는 이날 뒤쪽 산에 암자 이름이 미륵암이 있는 산을 올랐다고 했으니 엄청 고생을 많이 했을 것이다. 그 눈추위에 사흘을 자리에 누웠다고 하니 참으로 대담한 절 시주가 아닌가. 노인분이 왜 그리도 힘든 산행을 하였는지 무척 많이 뭐라캤는데 참 걱정이다. 좋아서 가고 싶다는 것을 어떻게 만류 할 것인가)



10여분을 홀로 정상등정의 기쁨을 만끽하고 이젠 하산이다. 대충 범어사 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리는데 장난이 아니다. 몇번을 미끄러지고 구부러진다. 이건 걷는게 아니고 거의 눈썰매질이다. 군생활 당시 제법 눈길이나 산길을 예측도 잘하여 무리는 없다고 봤는데 길이 넘 가파른데다 눈이 쌓여 있어 계속 힘들었다. 게다 거의 태양도 금정산에 가려 음지이다 보니 상당히 추웠다. 한참을 내려와도 초행길이다.

가도가도 안면 있는 것은 보이지 않아 잘못 내려 온게 아닌가 싶어 몇 번이고 뒤를 돌아다보고 옆을 한번더 가보았지만 한쪽으로 정리하고 내리니 이윽고 뻘밭인데다 과수원인지라 땅이 녹아 엉멍진창이다. 다행히 한분의 등산객이 보였는데 그사람도 단독인데 행색으로 보니 초행 길은 아닌 모양이었다. 나중에 안일이지만 이곳은 상수원 보호지역으로 등산객 출입금지 구역에다 휴식년제가 도입되어 관리중인 지역이었다.


위치는 금정산 범어사 아주 뒤편 , 나는 단 한번도 온 적이 없는 곳었다. 암자가 있고 좀 더 내려가니 저번에 둘러본 계명암 입구 초입이고이어 범어사 공양을 하는 대형식당이 나왔다.


한번 더 느낀 것은 아무리 쉽게보이는 산행이라도 얄팍하게 여겨서는 안되며 그럴수록 철저한 준비를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난 나의 위치를 망각하고 있음에 다시 한번 놀랬다. 만약 부상을 입었으면 어찌할뻔 했을까 ( 결국 이런 후회했지만 이후 똑 같은 행동을 하고 말았는데 쯥..).


상당 피곤 할 줄 알았던 몸은 생각보다 괜찮았고 집에 돌아와서는 내내 자랑하기에 바빴다. 좌우간 기분 흔쾌한 하루였다. 그리고 잠도 잘올 것같은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