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11월15일부터 17일까지 강원도 속초 설악산소재, 한화리조트서 업무관련 워크셥개최로 출장기회를 가졌다.
자연 , 나는 양양 하조대 외가에서 하루를 묵을 기회를 가졌고 때 마침 외조모 기제가 겹쳐 모친과 함께 출발하였다.
요즈음처럼 계절의 본질은 사라지고 지맘대로의 철인지라 겨울옷을 입어야할지 늦가을 옷을 입어야할지 챙겨 볼 사이도 없이 전날 저녁 늦게까지 동료들과 한잔 한 사유로 출발준비는 엉망이다.
급하게 모친을 불러 김해공항으러 가서 집사람이 예매한 비행기표를 들고 승객대기장에 대기하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울 뿐이었다.
어릴적에 외가를 가려면 긴긴 동해남부선을 타고 무려 11시간을 올라가야했던 길이 이젠 공항이 생기는 바람에 단 40분만에 도착한다니 세월 참 좋아졌음을 또 한번 느꼈다. 몇년전에 양양국제비행장이 생겼고 비수기 일주일 3회 왕복하는 항공편에서 처음으로 모친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그 기분은 그 어떤 말로도 형언 할 수 없을 만큼의 기쁨이 아닌가 .
물론 작년 여름 휴가시 전식구들을 승용차에 태워 3박4일의 기간동안 외가에서 보냈지만 거의 1년만에 이런 기회를 공적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기회는 그리 흔하지 않을 것이다.
출발한지 40여분 쯤 지났을 즈음에 동해바다에서 공항쪽으로 급하게 기수를 돌리면서 고도를 낮추는 운항땜시 완전히 놀이기구 타는 기분도 모자라 이제 지금 바로 가는 게(?) 아닌가하는 공포를 느낄정도의 기체이상을 감당하면서 등 언저리 땀이 송글송글 맺힐 정도였으니 엄청 공포심을 가졌던 것이다.
이게 서부에서 불어오는 중국의 대륙풍도 막아낸다는 태백산맥의 줄기인지라 전부 태백산의 영향이려니 생각하였지만 비행기를 운항하는조종사에 대한 곱지않은 시선과 목소리로 도착지는 가득하였다.비행기 차창에서 내려다 본 강원도의전경은 역시 즐감대상이었고 아득히 내려다보이는 경치중에 특별나게 시선이 내려꽃히는 그곳. 바로 외가댁도 봤으니 엄청 흥분 되었다.
아쉬운 것은 백두대간을 고속도로 공사하느라 길게 하얗게 잘린 산허리를 보니 울화통이 치밀었고 이 나라의 권력자들은 도대체 생각있는 자들인지 아니면 무뇌아들인지 어안이 없을 지경의 장면도 연출된다. 금강산 관광객을 위하고 통일도 좋지만 세계 어느나라에 가도 이렇게 국토를 동강내는 짓은 하지 않음을 그들은 알고나 있는지. 이 비행기를 한번 타보면 뭔가를 느낄것인데. 매일 서로 잘났다고 하고들 있으니 측은하기 짝이 없다.
양양읍내 있는 시장에서 간단한 찬거리와 정종 한병을 사들고 관내 시내버스를 타고 현북으로 향하는 길 도중, 작년에 불타버린 낙산사를 지나치니 새로운 생각이 든다. 복원 사업은 잘되고 있는지. 그것도 모자라 올해는 이 강원도 일대가 수마로 햘켜 엉망진창되었으니 이 고장의 운명이라는게 예전 한국전쟁때 38선을 두고 남북으로 대치하면서 이일대 주민들의 수난을 자아낸 그 한심한 시국과 별반 다름이 없지 않나 싶다.
하루 밤 낮. 지리상으로 남북은 있되 지배하는 자는 시시때때로 바뀌었으니 그 주민들의 고통이 과연 어떠 하였으랴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 별도로 삼남매의 대화속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것이다.
외가 초입에 들어서니 멀리 외가 마당입구에서 외삼촌께서 경운기를 운전하고 주차를 시키고 있다. 우리를 발견한 삼촌께서는 항시 그러하듯 반갑게 손을 흔드시고 우리도 같이 하였다. 1년만에 뵈도 만남의 감정은 항상 새롭고 뵙는 모습은 순수한 농민의 얼굴 고대로다. 아마도 우리 조국 어느땅에 가도 이런 고귀한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자랑스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외숙모는 부엌에서 제사 음식하느라 바쁘셨고 우린 방에 마주 앉아 그동안의 정감을 나누었다. 최근수해로 인하여 설악산에는 폭우로 휩쓸려 내려온 수목, 쓰레기등이 인산인해를 이루어 겨울철 눈이 내리기전에 정리하기위하여 행정기관에서 별도의 작업을 하고 있다며 삼촌도 집에서 그리 바쁘지 않기에 일당 70,000원의 임금을 받으며 인제군으로 새벽 일찍이 일을 나가신다고 하였는데 오늘은 오늘 새벽에 갑자기 내린 한계령 폭설땜시 작업을 나가지 못했다고 한다.
작년 방문하였을때 울 딸이 가장 신기해하고 좋아했던 마굿간을 보니 어느새 5마리로 불어나 있었고 게다가 새끼 송아지까지 있어 희한하였다. 울딸에게 즉시 전화로 알려 줬더니 좋아라 한다. 정말로 오고 싶다고. 방학이라면 같이 왔을텐데..
초저녁이 되어서야 이모가 오셨다. 나에게는 한분밖에 없는 이모인데 춘천에 사신다. 이마저도 같은 강원도이지만 버스를 두번 갈아타고 4시간여를 와야만 하는 외가이다보니 서로가 그리 쉽게 얼굴을 보지 못하는데 어제 밤에 모친께서 오랜만에 제사도 있도 얼굴도 봐야 하지 않겠냐는 설득에 오시게 되었다는데 한마디 한마디 춘천 사투리에 얼마니 웃기시던지 자동으로 그냥 넘어 갈뿐이다.
이윽고 건너편 당숙되시는 분이 옛날 제사를 모시듯 모시적삼을 입고 오시고 보니 제사장면은 얼추 갖추어 졌으며 나의 어린시절 든든하며 나의 튼튼한 언덕이 되어 주셨던 외할머니의 제사가 지내게 되었다. 외조모의 성정은 이미 작년에 밝힌 바 있어 거두절미하나 오랜 할머니방이었던 곳 벽면에 남아있는 생전의 초상화 모습, 생전 친손주들과의 졸업식 사진등을 보니 절로 눈물이 맺힌다.
외가에 올때마다 어렵고 힘들게 산다는 너희 가족과 나때문에 한시도 편하게 잠을 못잔다는 말을 하시면서 담배대를 물어셨던 할머니였으며 당신의 허리춤에 채워져 있는 주머니에 한푼의 동전이라도 있으면 나에게 주려고 하셨던 그할머니가 무척이나 그리웁다.
돌아가시기 불과3년전(1991년 여름휴가)에 집사람과 이곳을 방문하여 이제사 발을 뻗고 살수 있겠다며 혼미한 정신가운데서도 미소를 지어셨던 그 할머니댁이 어쩜 나의 불효함과 무신경에 절로 어깨를 들석이게 하고 말았다.
처음으로 제사상에 잔을 올리고 절을 올리고 음복을 한 후 밥상에 둘러 앉은 외가 식구들. 그리고 틈만 있으면 잔을 채워 나에게 건너주시면 한잔 하라고 하시는 외삼촌의 손길이 정겹고 오랜만에 조용한 시골집이 밥늦도록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고 그 시끄러운 소리에 외양간 소의 울음소리가 고즈녁한 강원도 산골의 적막을 조심스럽게 깨우고 있는 것이다.
언제 잠이 들것인지 춘천이모의 지난 세월담에 전부들 귀를 귀울이는 밤이 되고 있다.
--- 다음편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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